‘Maker to Market’에 도전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만나다

“Hardware is hard.” 하드웨어는 어렵다. 하드웨어를 장악한 나라가 세계를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개인용 3D 프린터, CNC 머신 등 제작 도구가 개발되면서 시제품 개발(프로토타이핑)이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1인 기업, 메이커가 제조업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디어를 물리적으로 구현해 제품으로 출시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인프라와 시스템, 인력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신생 기업이 대량 생산에 도전하다 제품화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새해를 맞아 Maker to Market에 도전하고 있는 메이커들을 만나,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와 제품화 단계에서 겪은 어려움을 들어보았다.

생물 실습을 더 편하게, 해부 교구를 만드는 EEDA

안혜정 메이커는 메이커이자, 대학 강사이자, 부산에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활동가다.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다(EEDA)라는 팀을 꾸렸다. 팀원들이 과학,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속해 있어서, Engineer, Education, Design, Art에서 머리글자를 따와 팀 이름을 지었다. 자유로운 창작가들이 모였기에 융복합 교육 및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꿈을 품었다.

EEDA 팀 사진 (사진제공: EEDA)

EEDA 팀 사진 (사진제공: EEDA)

이다는 생물 실험을 위한 해부 교구를 개발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해부실험을 할 때, 실험에 참여하기보다는 옆에서 지켜보거나 도망갔다고 말하는 팀원의 말 때문에 시작됐다. 당시 안혜정 메이커가 지인이 가지고 있는 펠트 소재의 인체 해부모형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국내 해부실험 대체 교구의 열악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지난 3월 미성년자의 동물 해부실험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해부실험을 대체할 대안 교육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계기로 작동했다.

‘동물 해부실험을 대체할만한 높은 사양의 실험용 교구를 만들자’라는 목표로 개발에 착수했다. 3D프린터로 금형을 제작하고 실리콘을 부어 키트를 제작하기에 시도했다. 재사용이 가능하게 만든다면 학습용 교보재로 탁월한 대안이었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몰딩 (사진제공: EEDA)

3D 프린터로 제작한 몰딩 (사진제공: EEDA)

동물의 내장기관을 본떠야 하므로, 복잡한 금형을 제작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비용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3D 프린터 특성상 마감 처리가 정교하지 못하다는 것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해부 교구는 동물의 장기기관과 흡사한 질감을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재료를 구하면서 국내 재료시장에 대한 정보나 네트워크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재료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플랫폼이 개발된다면 무척이나 좋겠다는 게 안혜정 메이커의 생각이다.

개발중인 동물 내부 장기교구(좌)와 개구리 몸체(우) 모습 (사진제공: EEDA)

개발중인 동물 내부 장기교구(좌)와 개구리 몸체(우) 모습 (사진제공: EEDA)

채색한 개구리 모형 (사진제공: EEDA)

채색한 개구리 모형 (사진제공: EEDA)

지금 이다 팀의 메이커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기자재와 공간 지원이다. 안혜정 메이커는 “이다에는 학교나 특정 메이커 스페이스에 소속된 팀원이 있어서 장소 대여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없으면 메이커 스페이스를 마음 놓고 사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자재가 있는 공간을 무료로 지원해준다면 스타트업을 꿈꾸는 메이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며 공간 지원의 필요성을 전했다.

이다팀이 개발 중인 해부교구는 가이드북, 스티커, 연계 교육프로그램 등을 포함한 키트로 현재 60~70% 정도 개발된 상태다. 크라우드 펀딩과 교육기관 NGO 등과 협력하여 키트와 함께 국내외 교육현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감성에 날개를 달다, 에그 라이트를 만드는 에잇스라잇의 박재형 메이커

박재형 메이커는 원래 디자이너다. 에그 라이트를 처음 디자인한 건 2016년이다. 독특하고 감성적인 디자인 덕분에 2017 K-디자인 어워드에서 동상을 받았다. 기발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메이커에겐 익숙한 일이지만 디자인 직군에선 다소 낯선 일이었다. 이런 디자인을 어떻게 제품화할 수 있겠냐는 주변의 반응에 오기가 생겨 직접 제품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미지= 2018 K-디자인 어워드 사이트 내 2017년 수상작 소개

이미지= 2018 K-디자인 어워드 사이트 내 2017년 수상작 소개

에그 라이트는 알 모양의 무드등이다. 제품이 꺼져있을 때는 단순한 알 모양이지만, 불이 들어오는 순간 날개 달린 새가 된다. 알 표면은 부드럽고 은은하게 빛을 내고 조명이 놓인 뒤 벽면엔 아름답게 겹쳐진 풍성한 깃털 모양의 날개가 그려진다. 진동 센서를 사용해 알을 톡 하고 건들면 불을 켜고 끌 수 있게 해 제품 작동에 흥미를 더했다. 에그 라이트는 빛의 직진성과 확산을 이용해 제품을 켜고 껐을 때의 시각적 이미지를 다르게 하여 사용자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 박재형 메이커는 기존 조명들은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점이 아쉬워 빛의 다양한 특성을 이용해 스토리를 가진 감성 무드등을 개발하게 됐다. 에그 라이트는 감성적인 인테리어 소품이자 수유등으로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사진제공: 박재형 메이커)

(사진제공: 박재형 메이커)

디자이너였던 그에게 제작은 낯선 영역이었다. 심미적인 디자인과 물리적인 구현이 가능한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지만, 현실적인 설계 및 양산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디자인 제품은 비싸다’라는 소비자의 인식을 ‘디자인 제품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비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초기 창업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자본금 부족 문제 때문이다. 박재형 메이커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하려는 계획인데,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만드는 것에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창업 지원 정책으로 지원금을 받고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업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꾸준하게 지원받기는 쉽지 않다. 박재형 메이커는 “한 지원 사업에서 시제품 1개 제작비를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다, 하드웨어 제품을 개발하는데 시제품을 하나만으로 바로 제품 양산을 하기엔 리스크가 큰데, 중복 지원 기준이 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안전한 캠핑을 위한 캠핑 가드를 만드는 씨디피그룹의 이민구 메이커

이민구 메이커는 캠핑 마니아다. 국내에 캠핑이라는 취미/문화가 처음 도입될 때부터 즐기기 시작했다. 캠핑을 자주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캠핑 현장의 보안과 안전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안전한 캠핑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캠핑용 보안장치 캠지(Cam. G)를 개발하게 됐다.

캠지 (사진제공: 이민구 메이커)

캠지 (사진제공: 이민구 메이커)

캠지는 휴대용 보안장치로 주변의 움직임을 인식해 경보음을 발생하는 장치다. 캠핑 중 잠시 텐트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 캠지를 설치해 두면 좋다. 텐트 안에 캠지를 두고 나가면 누군가 텐트에 침입했을 때 움직임을 감지하고 경보음이 울린다. 블루투스 통신이 가능한 지역에 사용자가 있으면 텐트에 외부 침입이 발생했음을 휴대전화 앱으로 알려준다. 강력한 알람이 일정 시간 동안 지속하기 때문에 소심한 좀도둑을 쫓아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차량 도난방지 경고음과 유사한 원리다. 경고음을 무시하고 범행을 강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 이민구 메이커의 생각이다. 소리만으로 도둑을 쫓아내는 게 쉽진 않겠지만, 일단 큰 소리가 울리면 주변에서 관심을 두게 되고 캠핑족들의 자발적인 보안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거다.

이민구 메이커는 지난 11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와디즈를 통해서 캠지를 대중에게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보니 의도하지 않은 반응에 놀랐다고 한다. 캠핑족을 위해 만든 캠지가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환영을 받았다는 것이다. 외출이나 취침 시에 캠지를 문 혹은 창문 앞에 설치해두면 외부 침입자에게 경고음을 발생시켜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감 덕분이었다. 주로 원룸이나 다가구 주택에 사는 1인 가구 여성의 니즈에 꼭 들어맞은 거다. 또한, 캠지에 온도/습도 측정, 일산화탄소 측정 기능과 비상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LED가 내장되어 있어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싶은 1인 가구에 매우 적합하다.

캠지 소개 영상 속 사용 모습 (사진제공: 이민구 메이커)

캠지 소개 영상 속 사용 모습 (사진제공: 이민구 메이커)

한 차례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제품 양산에는 어려움이 많아 아직 오픈마켓에서는 캠지를 구매할 수 없다. 제품 기획이나 마케팅 쪽에는 자료도 많고 전문가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제품 제작과 양산 측면에서는 전문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전에 없던 제품을 개발하려고 하니 시행착오를 계속해서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니 스스로 개척하는 수밖에!

이민구 메이커는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초기 단계에 집중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단계에서 도움을 받기 어렵다”라며 제품 개선과 양산을 위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박재형 메이커가 겪는 어려움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처럼 공통된 어려움을 겪다가 제품을 양산하지 못하고 시제품 단계에서 사업을 접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하드웨어를 생산하는데 단 한 번의 시제품 제작으로 성공을 거두는 기업은 거의 없다. 무선 청소기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다이슨(Dyson)의 맥스 콘체 최고경영자는 무선청소기 개발을 위해 5000번 이상의 실패를 거듭했고, 최근 출시한 헤어드라이어는 5년 동안 600여 개에 달하는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제품을 사용해보고 계속 다시 만들어 보면서 사용성과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나가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이지만 시제품은 완성품의 어머니다. 시제품 개발과 제품 양산을 집중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동일 사업이더라도 다방면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국내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 메이커와 관심과 지원에 지구력을 길러야 할 시점이다.

이 기사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운영하는 메이크올 뉴스레터 3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메이크올 뉴스레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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