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랑, 벚꽃 말고, 오토마타를 만나다.

따뜻한 봄기운을 담은 오토마타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 권봉서 메이커 作

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어떨까요?

오토마타 작품을 만들며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합니다.

#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

작년 11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은 게 오토마타 전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본래 계획은 Wintergatan의 <Marble Machine> 같은 크고 멋진 오르골 작품을 하나 완성해 보는 것이었으나, 제 능력으로 감당이 안 될 듯해서 오토마타 전시회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돌아보면, 전시회를 열어 일반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쪽이 만들기 문화를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사업의 본래 목적에 더 맞아 잘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움직이는 기계인형 오토마타 놀이터’ 전시장 풍경

‘움직이는 기계인형 오토마타 놀이터’ 전시장 풍경

테미공원은 제가 사는 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뒷동산으로, 대전의 벚꽃 명소입니다. 매년 4월이 되면 벚나무로 된 동산 전체에 벚꽃 잎이 눈처럼 내리는 아름다운 곳이지요.

이번 오토마타 전시회의 주제가 ‘봄’이었습니다. ‘봄’ 하면 ‘새로운 시작’, ‘설렘’, ‘사랑’의 느낌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릅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원형이 되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아무도 없는 테미공원에 벚꽃 잎이 날리고,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 꽉 끌어안고 있는 모습. 따뜻한 봄날, 애인의 품속에서 얻었던 위안과 행복, 그리움, 아름다움을 오토마타로 표현하고 싶다는 게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을 만든 최초의 충동이었습니다.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 작품 사진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 작품 사진

머릿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이 이미지를 잘 붙들어 놓는 것은 오토마타 작품을 만드는 데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창작 과정 중 의도한 대로 잘 안 되고 동작하지 않는 문제는 숱하게 나타나고, 이 순간을 극복하기보다는 타협하는 쪽이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메이커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게 있어야 타협과 개선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MDF 판재로 만든 벚꽃

본래는 4T 자작나무 합판을 CNC 가공해서 벚꽃을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시 인원 다섯 명이 CNC 라우터 한 대를 쉬지 않고 돌린 결과 장비의 핵심 부품인 스핀들(spindle)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전시 열흘 전 일이었고, 장비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간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듯하여 3T MDF 판재를 레이저커팅 하기로 했습니다.

MDF 판재에는 에어브러시가 잘 먹지 않고 나무색이 비쳐 보여서, 페인트 본래의 색이 바르게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젯소를 칠해야 하는데요. 꽃잎 55개에 붓으로 일일이 젯소를 바르려니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붓질을 깔끔하게 하기도 까다롭고요.

그래서 MDF 판재 전체에 하얗게 젯소칠을 먼저 하고, 젯소칠이 된 MDF 판재를 레이저가공 하여 꽃을 만들었습니다.

젯소칠 한 MDF 판재를 레이저가공하고, 그 위에 에어브러시로 채색하는 모습

젯소칠 한 MDF 판재를 레이저가공하고, 그 위에 에어브러시로 채색하는 모습

커팅하고 남은 부분은 버리지 않고 칠을 위한 틀로 사용했습니다. 꽃을 틀에 끼워놓고 에어브러시로 채색을 하면 꽃이 에어브러시의 압력에 의해 꽃잎이 뒤집히는 문제를 막고, 다른 꽃과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 채색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품에 필요한 꽃은 55개였지만, 3배수를 만들었습니다. 흰색, 연분홍, 분홍 세 가지 색상의 꽃을 충분히 만든 후 작품에 필요한 조각을 골랐습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꽃의 색상이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잘못된 설계, 충분치 못했던 실험

작품 제작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메커니즘 설계가 애초부터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입니다.

메커니즘 테스트를 하는 모습

메커니즘 테스트를 하는 모습

기어를 주 메커니즘으로 사용하는 작업이 처음이라, 작품 제작 전에 작은 규모로 실험을 했습니다. 기어 4개가 잘 맞물려 돌아간다면, 55개도 잘 돌아갈 거로 생각했죠. 그래서 ‘초기 설계’ 그림처럼, 55개 기어를 한 줄로 연결해서 모터 하나로 모든 기어를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55개를 한 번에 연결하니, 전체 기어가 꽉 막혀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기어 수가 많아질수록 기어간 마찰이 커져서 모터가 버틸 힘을 초과한 것 같았습니다.

좌절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전시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요. 오랜 궁리 끝에 찾은 답은 ‘최종 설계’ 그림처럼 기어를 삼중 구조로 설치하여 모터 하나의 힘이 전체 기어에 적절하게 분배되도록 설계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기어가 맞물리는 부분에 ‘슈퍼루브’라는 윤활 스프레이를 뿌려 마찰을 줄였습니다.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 뒷면. 65개의 기어를 삼중 구조로 설치한 모습

<테미공원에 벚꽃이 내리면> 뒷면. 65개의 기어를 삼중 구조로 설치한 모습

# 작품 제작에 외부 서비스 활용하기

오토마타의 동력원은 다양합니다. 바람개비를 달아서 바람의 힘으로 동작하게 할 수도 있고, 손잡이를 달아서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대부분을 모터로 구동했습니다. 콘센트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품 하단 기어박스의 빨간 스위치를 누르면 작품이 움직이는 식이지요. 관객이 손잡이를 돌리도록 하면 작품이 금방 파손되니, 모터와 스위치를 활용한 것입니다.

기어박스는 12T 레드파인 집성목을, 작품을 감싸는 전시함은 3T 아크릴을 사용했는데 직접 재단하지 않고 외부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DIY 재료를 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원하는 나무 품종을 선택한 후에 가로, 세로 크기와 수량을 입력하면 그 크기와 개수대로 재단해서 택배발송 해 주는 식입니다.

목재를 조립하여 만든 기어박스

목재를 조립하여 만든 기어박스

작업 시에는 배송되어 온 나무와 아크릴을 조립만 하면 상자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목재 비용에 재단 비가 추가되지만, 마감일이 다가오고 프로젝트 팀원들이 지쳐가고 있을 때 단순하고 지겨운 부분을 외부 서비스를 이용해 처리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 지원사업을 수행하며

이번 오토마타 전시 프로젝트는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수행한 제 첫 경험입니다. 지원금을 받고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가 프로젝트를 하는 데 왜 나라에서 지원해 줄까?’였습니다.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연탄을 사다 줄 수도 있고, 배곯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 줄 수도 있는데 왜 장난감 만드는 일에 나랏돈을 쓸까? 지원서를 내기 전에 해야 했던 고민인데,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나서야 그 고민을 현실감 있게 하게 된 것입니다.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느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운동(Movement)이란 더 나은 삶의 방식이 저기 있으니 같이 가자는 것인데,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은 말하는 자, 글 쓰는 자가 아닌 ‘만드는 자‘가 선두에 서 있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묵묵히 작품을 만드는 게 운동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 얘길 하려니 민망하지만, 신기하게도 지원금을 받아 사용할 때 고민을 더 깊게 하게 되었습니다. 재료비 걱정 없이 창작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 한국과학창의재단과 24시간 공간을 내어주어 밤샘 작업을 도와준 대전 메이커스페이스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 글이 만드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기를 바라며, 마칩니다.

글: 권봉서

이 기사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운영하는 메이크올 뉴스레터 3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메이크올 뉴스레터 보기

FacebookTwitterKakaoLine